출처 : 매경이코노미
링크 : https://v.daum.net/v/20260123210312467
요약 : 인간은 뇌와 척수가 하나의 중추신경계로 연속되기 위해 두개골에 남겨진 통로인 대후두공이 두개골 아래의 정중앙으로 이동했기에, 척추가 땅과 수직으로 설 수 있게 무거운 두뇌가 골프티 위의 공처럼 척추 위에 균형 있게 얹혀 있다. 직립보행이 가능해지면서 후각에서 시각으로 감각의 중심이 이동했다. 눈으로 세상을 파악하고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게 되자 상대방과 정서적 소통이 시작됐다. 눈의 흰 공막이 커지면서 정서적 눈맞춤은 시선의 공유로 발전했다. 또 자유로운 두 손으로 가리키기를 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인간은 눈의 흰 공막과 손가락으로 자신의 의도와 관심을 상대방과 공유하는 공동주의가 가능해진 것이다. 다른 동물에게는 불가능한 상호주관적인 세계를 구성할 수 있게 됐다. 그 후 인간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능력, 즉 추상적 사고와 상상력을 하기 시작했다. ‘호모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약 7만년 전부터 나타난 ‘허구를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인간의 문명을 가능케 했다고 하며, 이를 인지혁명이라 말했다. 인지혁명과 관련해 유발 하라리는 영국 옥스퍼드대의 교수 던바의 150명 한계론을 끌어들였다. 던바는 인간관계의 조건이 서로 누구인지 아는 것이라 여겼다. 이 조건을 충족하려면 150명이 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19992년 발표된 ‘영장류에서 신피질 크기와 사회집단 규모의 관계’라는 논문에서 던바는 뇌의 신피질 크기와 안정적인 사회집단의 크기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음을 주장한다. 던바는 언어. 이성, 사회적 판단 등을 담당하는 신피질과 나머지 뇌의 부피를 계산했다. 그 결과 인간 신피질에 대응하는 집단의 크기는 147.8명이었다. 던바는 이 숫자가 신뢰할 만한 것인지 인류학적 자료를 찾아봤는데, 놀랍게도 신석기 시대, 로마 시대의 매니플(전술 단위), 현대 보병사단의 중대 크기 모두 150명 정도였다. 서로를 믿고 싸울 수 있는 숫자는 150명이 한계라는 것이다. 타인의 시선을 따라가며 ‘공동주의’를 하는 능력은 성인이 되면서 특이하게 변질된다. 시선과 사회적 규칙이 결합된다. 예일대 심리학과 교수 스탠리 밀그램의 ‘올려다보기 실험’은 이러한 ‘시선의 제도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1969년 연구팀은 뉴욕의 혼잡한 거리에 바람잡이들을 세워놓고, 아무것도 없는 건물의 6층 창문을 뚫어지게 올려다보게 했다. 실험의 변수는 ‘바람잡이의 숫자’였다. 한 사람일 때는 4%, 3명일 때는 약 50%, 5명은 무려 80%가 걸음을 멈췄다. 밀그램의 실험을 통해 진정한 의미의 집단은 5명에서 시작된다고 해석할 수 있다. 밀그램은 이 실험에서 집단의 행동을 비이성적인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정보 획득의 과정이로 해석했다. 밀그램의 실험과 던바의 150명 한계론을 연결해보면 공동주의가 가능한 것은 150명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그룹과 군중을 개념적으로 구분할 필요성이 생긴다. 개인 간의 상호시선이 작동하지 않고, 허구를 매개로 유지되는 150명 초과의 집단을 군중이라 할 수 있다. 이때 집단의 시선은 150명까지는 어느 정도 합리성을 유지하며 각 개인들의 행동을 통제한다. 그러나 150명을 초과하면 군중심리라는 현상이 나타난다. 심리학자 르 봉은 군중심리의 기제를 익명성, 전염성, 그리고 피암시성으로 요악한다. 르 봉은 멀쩡한 엘리트나 지식인도 군중 속에 섞여 익명적 존재가 되는 순간, 자신의 독립적인 이성을 상실한다고 설명한다. 또한 군중 속에서 감정과 행동은 급속하게 전염돼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감정이 생각과 행동을 지배한다. 가장 위험한 것은, 집단은 아주 쉽게 선동당한다는 사실입니다. 군중은 리더나 선동가의 말에 비판 없이 복종한다. 이것이 20세기 초반 히틀러나 무솔리니의 파시즘이 가능했던 이유이다.
내 생각: 현대 사상들을 보니 아직도 군중심리는 아직도 많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