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죽음도 자유

사회가 발전할수록 의학도 발전하고, 사람들의 평균 수명도 늘어나고 있다. 또한 회복 불가능한 환자들의 생명 연장 치료 기술도 발전했다. 하지만 그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그래서 요즘에는 ‘존엄사를 허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존엄사란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며 죽는 행위를 말한다. 다시 말해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중단하고 자연스럽게 삶을 마무리하는 것이다. 존엄사는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존중하는 제도이기에 허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 존엄사는 자기결정권을 존중받는 죽음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한다. 이는 개인이 자기결정권을 갖는다는 것이다. 2024년 6월, 성누가 병원과 서울대의 공동 연구팀이 전국 성인 1천 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말기암 환자일 경우 생명 연장 치료를 하겠다’고 답한 사람은 고작 8%에 불과했다. 이러한 상황은 존엄사가 생명을 경시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을 존중하는 일임을 보여준다.

둘째, 존엄사는 인간의 존엄성과 가족의 평화를 지키는 길이다. 가령 가족 중 한 명이 암으로 인해 결국 코마 상태에 빠졌다고 생각해 보자. 병원비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가족들이 겪는 심리적 고통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환자는 아무것도 모른 채 생명 유지 장치에 기대어 ‘살아 있는 시체’로 존재한다면, 누가 “생명은 모두 소중하니 포기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셋째, 존엄사는 무의미한 고통을 멈추며 인간답고 품위 있는 죽음을 뜻한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만약 말기암 환자라 생각해 보자. 당신에게 앞으로 살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희박하고 고통은 계속 이어진다고 하자. 이때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말기암 환자나 회복 불가능한 환자들이 주어진 남은 삶을 스스로 선택한다는 것은 그들에게 희망 그 이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존엄사는 의학 기술로 생명을 이어 가며 고통을 느끼는 가혹한 ‘삶’보다 더 나은 인도주의 정신이 담긴 ‘죽음’이라 볼 수 있다.

존엄사는 생명을 포기하는 제도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존중하는 마지막 선택이다. 따라서 우리는 회복 불가능한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이들의 자기결정권과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존엄을 지켜주기 위해, 존엄사 제도의 실효성을 확대하고 관련 법적 기반을 더욱 공고히 구축해야 한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사회는, ‘사는 것’만큼 ‘잘 죽는 것’ 또한 개인의 기본권으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회이다. 죽음을 두려워하기보다 품위 있게 받아들일 수 있는 성숙한 공동체 윤리야말로 진정으로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사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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